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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Diary/Cinephile Life

본격적인 시작은, 2015년 겨울의 나로부터.

by Eunbyeol_Eby 2018. 9. 29.

 나는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이 말을 하고 나면, 내 주변의 어느 누구도 그 말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이게 사실이다. 적어도 2015년 중반까지는 그랬다. 2011년, 대학 입학으로 서울에서의 자유를 얻은 후 온갖 종류의 취미를 섭렵하던 나에게 영화는 가끔 천만 영화 한번쯤, 친구랑 할 일 없을 때, 뮤지컬 볼 돈이 없어서 등등의 이유로 어쩌다 한번씩 보는 것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까지 안착한 2015년, 한가지 일이 생겼다. 동생이 대학에 입학하고, 동생과 함께 살게 된 것이다. 동생은 당시 영상 계열의 학과에 진학했고, 영화를 하고 싶어했다. 나는 그런 동생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고, 또 고된 대학원 생활에 지쳤을 때 쉽고 저렴하게 접할 취미가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영화였다.

 대학원에 진학하기 전 잠시 미국에서 어학 연수를 했었다. 마침 그 기간에 아카데미 시상식이 진행되었다. 다음 날 오전 수업시간에 화두로 올라와서 선생님과 토론을 하는데, 그때 느꼈던 것이 '미국 사회가 얼마나 영화를 즐기고 사랑하는가' 였다. 수상한 영화, 노미네이트된 영화, 왜 이 영화는 떨어졌고 이 영화는 수상을 하게 되었는지 말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영화들을 보고 이해했다는 사실이 바탕이 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당시의 나는 그 많은 출품작 중 한 편의 영화밖에 보지 않았었고, 그 사실이 약간은 부끄러웠다. 문화를 이해하려 그 나라에 방문한 사람이, 그 나라의 가장 핵심적인 문화를 즐기지 않았다니. 반성해야 할 일이었다.

 단순히 수업시간의 경험뿐만이 영화를 관심갖게 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에 머무를 당시 나를 많이 아껴주고 도와주신 한인 가정에서 가끔 묵을 때면, 저녁마다 온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 영화를 보았다. 미국 영화, 한국 영화 할 것 없이 그날 흥미로운 영화를 함께 보았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예능 프로보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할 이야깃거리를 가족이 공유하는 것에 대해 많이 고민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미국에서의 경험은 영화를 고민하게 만드는 좋은 시작점이었다. 두어 시간만 투자하면 영화는 간단히 볼 수 있는 매체이다. 책보다 수동적으로 내용을 주입하지만 시각으로 인식하는 것이 내용을 기억하게 만드는 효과는 더 좋다. 그 때까지 즐기던 어떤 기호 매체보다 대중성이 강했고, 접근성이 강했다. 부모님과 모바일 게임을 공유하기는 어렵고, 뮤지컬이나 연주회는 친구에게도 권유하기 어려운 가격대가 관건이었다. 영화는 가장 간단했다. 그렇게 영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계획을 세워 정기적으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피곤할 일일 것 같지만, 취미를 만드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결국 익숙함이 자리잡기 때문이다. 2015년 겨울의 나는 새해를 맞이하기 직전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2017년 CGV VIP 되기, 영화 50편 감상하기. 그 두 가지의 목표를 두고 가급적 주말마다, 혹은 시간이 날 때마다 영화관에 갔다. 집과 학교는 가까웠고 그 사이엔 영화관이 있었다. 저녁 퇴근길에 들러 영화를 보러 가곤 했다. 맘에 드는 좋은 영화가 있으면 두번도 보러갔다. 영수증 티켓은 맘에 들지 않으니 포인트로 포토 티켓을 제작했다. 영화 포스터가 담긴 티켓을 제작하고 수집하는 것, 그리고 영화 리뷰를 한 어플에 기록하는 것까지, 수집벽과 기록벽이 있는 나에겐 완벽한 시작과 끝이었다. 퇴근 전 오늘은 무슨 영화가 있을까 영화관 상영시간표를 체크하며 하루하루를 기대하는 재미도 생겼다. 영화는 그렇게 재미를 주었다.

 2016년 나는 거짓말처럼 51편의 영화를 관람했다(영화관 재관람 포함). 영화를 4편 연달아 본 날도 있었다. 별점 0.5점을 주며 다시는 이런 영화 따위 보고 싶지 않은 적도, 너무 좋아서 5회차를 찍은 영화도 있었다. 놓쳤던 아카데미 수상작이 특별 이벤트로 상영될 때 모두 가서 보았다. 영화제 수상 기대작들을 관람하고 나서는 다음 영화제가 기다려질 정도였다.

 단, 문제점이 하나 남았다. 한줄평은 내가 느낀 감정을 적기엔 가끔 부족할 때가 있었다. 글에 많이 익숙하지 않다보니, 압축된 표현으로 감동을 나누기엔 가끔 너무도 아쉬웠다. 다시 쓰고 고쳐도 부연이 아쉬울 때가 있었다. 글로 더 쓰고 싶어졌다.

 다시 돌아가, 계획을 세워서 무언가를 정기적으로 한다는 것은 취미를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블로그는 정기적으로 들어와 쓰고싶었던 영화 관련 글을 풀어두고 정리해서 올리는 좋은 창구가 되었다. 공개된 것은 미미하지만, 풀고자 하는 공개되지 않은 매듭이 여전히 많다.

 여전히 바쁜 삶은 지속되고 있다. 바쁘다고 한동안 영화를 보지 않았더니, 그립고 아쉬운 마음이 약간의 우울감까지 동반되길래 그런 삶은 그만두었다. 한가지에 매몰되어 산다고 행복한 삶이 아닌 것을, 이라 생각하며 시간 날 때면 영화를 보러 간다. 글감이 될 만한 것을 메모해 둔다. 초석을 다져서 가끔은 완성하여 내놓기도 한다. 바쁜 와중에 그래도 이정도로 기록을 하고 있는 것은 오랜만의 꾸준함이다. 노력하려고 한다.

 별다른 일은 없었지만 초심을 다지고 싶은 날이었나보다. 시작하던 시기의 나를 돌이켜보는 좋은 기회였다.

 오늘도 한줄만 더 쓰고, 자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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