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운좋게도 엄청나게 기억에 남을 만한 인종차별을 당해본 적은 없다. 정말, 'lucky'한 경험이다. 사실 잘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유럽을 혼자 한달 가량 여행했고, 미국도 한달 넘게 혼자 여행하면서 남이 나를 어떻게 보고 어떤 제스쳐를 취하는지보다 내가 가야할 길이 바빠 서둘렀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과격한 형태의 인종차별에 노출되지 않아본 것은 굉장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것이다. 우리는 왜, 행운에 삶을 맡겨야 하는가? 이것이 아시안의 삶이다. 동네에서 어떤 아시안이 공격당해 스러져가도, 우리는 혹시나 내 주변의 누군가가 나에게 반감을 가질까봐 이 사건을 쉬이 언급조차 못한다. 위협은 현실로 다가오고, 죽음이 삶보다 앞설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우리는 그저 조용히, 침묵한다.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 삶인가?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힘들거라고는 예상했지만 이런 방식으로 힘들 것이라고는 크게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힘들다. 코로나가 터진 후 가장 먼저 마스크를 쓰고 행동거지를 숨겨야 했던 아시안들은, 그들의 책임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먼저 마스크를 쓰면서 더욱 공격당했다. 트럼프 정부는 무능한 자신들이 공격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공격의 방향을 중국으로 돌렸고, 이 미중전쟁의 포화 속에서 스러져간 것들은 아시안들 뿐이다.
애틀랜타에서 일어난 총격 사건에 대해 가장 공적인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보아야할 사건 담당자가, 명백한 'hate crime'을 그저 'bad day for him' 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며 무기력해졌다. 그리고 이 사건이 심지어 한국에서조차 여혐 기조에 휩쓸려 충분한 반향을 이끌어내지 못하게 되는 것을 보며 우울해졌다. 그렇다. 아시안으로써의 나의 정체성도 중요하지만, 나의 더 큰 정체성은 여성이라고 생각하는데, 여성의 삶은 나아지는 기미가 없다.
많은 여성 유학생들의 고민 중의 하나는 이것일 것이다. 내가 이방인으로 외국에 사는 것이 나을까, 여성으로 한국에 사는 것이 나을까. 이방인의 삶이 얼마나 고달프고 힘든지 경험한 후, 나는 오히려 이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한국 내에서 더욱더 과격해져가는 여성을 향한 시선을 보며, 그 또한 확실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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