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가장 우울했던 순간을 고르라고 한다면, 2017년 겨울이 가장 아프고 어두웠던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름을 지나며 힘들게 졸업하고, 출근하는 와중에 새벽 3-4시까지 공부하며 영어 공부를 준비하고, 원서도 써 가며 12월 이내에 유학원서를 준비하려고 애써보았지만 결국 그 해의 원서 접수는 포기해야했던 그 순간. 여전히 학교에는 출근하고 있어서 일상은 9:30 to 8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당시의 일상에는 하나가 더 추가되어 있었다. 8시에 퇴근을 하면, 곧장 침대에 누워 울기 시작했다. 한 2시간쯤 눈물을 흘리고 나면, 그제야 생각에 지쳐 늦은 집안일을 두어개 한 뒤, 대충 뭔가로 식사를 때우고 우울감에 스러질 때쯤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출근. 그게 우울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그 일상을 한 두달쯤 살고 있을 때, 어느 날 깨달았다. 이 것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달라질 수 없겠다, 생각한 그 때부터 나름의 탈출구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2017년의 나는 취미조차 줄이고 공부해야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영화를 일상에서 지우고 그저 학교-독서실-집을 왕복하며 부족한 만큼 공부해야한다는 생각에 가득차 있었다. 새벽 3-4시에 독서실에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스스로에게 뿌듯함을 느끼던 것도 잠시, 결국 그 해의 유학 원서 접수를 포기하면서 뿌듯함은 몇 배의 절망감으로 되돌아왔다. 그렇게 했는데도, 나는 부족한 사람인가? 싶은 그 마음. 이러다 죽겠다, 싶어서 일상을 바꾸자고 생각하니 다시 영화가 떠올랐다. 삶에서 지웠던 영화를 다시 삶으로 가져온 그 순간. 몇 안되는, 인생에서 나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은 결정이다.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우울감에 가장 깊게 빠지는 장소는 침대 위. 퇴근 후 집에 가서 보내는 그 우울의 시간을 단순히 미뤘다. 퇴근하고 영화 한편을 보고 돌아왔고, 그러면 바삐 청소를 하고 뭘 해야만 잠에 들 수 있었다. 우울로 보낼 시간이 없었다. 주말에는 더욱 심하게 영화를 보았다. 하루에 3편의 영화를 연달아 본 적도 있었다. 계속 다른 영화를 상영해준 CGV 아트하우스에게 감사를 표한다. 그렇게 여러 편의 영화를 보고 돌아오면 영화를 곱씹느라 나의 우울에 빠져 지낼 시간이 없었다. 영화에 대한 감상을 좀 더 제대로 써보려고 블로그도 다시 켰다. 그렇게 2018년 초입에 별점과 평가에 조금 더 신경을 쓰며, 점점 우울감을 탈피하고 다시 어느 정도의 평온한 나로 돌아왔다.
이 경험은 여전히 삶에 영향을 준다. 돌아보니 당시의 나는 거의 초기 우울증에 가까운 증상이 맞았다. 그렇게 매일 밤 우는데, 힘들었는데. 정말로 운이 좋게도 더 큰 우울감으로 발전하기 전에 자가치료법을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그 치료법은 내가 힘들 때마다 다시 삶에 적용하며 힘을 내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사실 지금 다시 좀 힘들어서 이 얘기를 다시 끄집어낸다. Preliminary Exam을 치러야 하는 학기인데 내년으로 미룰 가능 성이 높고, 압박은 계속 들어오는데 내 안의 창의적인 나는 대체 어디로 갔는지 아무것도 뱉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9월 들어 영화를 벌써 3편째 보았다. 영화 리뷰도 더 써보고 싶지만 사실 영화를 보는 시간도 죄책감이 들 정도로 너무나 정신이 없다. 그렇다고 놀지 않는 것도 아니면서....싶다. 스스로에게 관대한 타이밍이 너무 제각각인 거 같지만, 내 삶에 있어서 고마운 존재인 영화에게 다시 시간을 좀 더 할애해보고 싶다. 다시 삶이 궤도를 찾더라도, 영화는 함께하는 것처럼 놓치지 않을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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