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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Diary/Daily Life

20211004 우울한 글쓰기의 고착화 탈피

by Eunbyeol_Eby 2021. 10. 5.

 어렸을 때부터 나는 글쓰기를 좋아했다. 일기를 쓰는 것보다 시 한편을 뚝딱 써내는 것을 더 좋아했고, 종종 일기를 쓰기 싫을 때 시를 써서 하루를 때우고 때때로 선생님의 칭찬까지 곁들여 글쓰기를 즐겼다. 당시에 MBTI를 했다면 S일리가 없었을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은 재미있었고 글쓰기 대회에 나가 곧잘 상을 타오고, 나는 그걸 내가 제일 잘하는 줄 알았다.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다던 꿈을 지나 지금은 화학에 재미를 붙였다고 10년을 화학 전공을 하고 있다. 나는 이 분야의 천재이거나 전공에 미쳐버린 인재 따위는 아니어서 노는게 좋은 평범한 인물이고, 그런 범재로써 박사 과정이 얼마가 괴로운지 매일매일을 체감하며 살아간다. 이 우울함을 어떻게든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에 다시금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저 긴 버전의 일기 수준에 지나지 않지만 무언가를 쓸 때 조금 나아지는 것을 느꼈다. 어느 날은 가볍게 끄적이기도 하지만 어느 날은 꽤나 긴 뭔가를 써보기도 하고, 어렸을 때처럼 소설을 구상해보기도 하고 혹은 시나리오 시놉시스를 써보기도 한다.

 그래도 요즈음 가장 주요한 글쓰기는 일기다. 우울한 마음을 풀어놓는 이 일기들. 정말 힘든 어느 날, 문득 쓰고 싶어져 한글 자판이 되는 노트북(주 노트북에 일부러 한글 키보드를 다운로드 받지 않았다. 일에 집중하고 싶어서.)을 꾸역꾸역 충전해가며 쓴다. 그렇게 문득 떠오른 단상에 대해 글을 쓰고 나면 약간, 개운해진다.

 내가 왜 글을 쓰고 개운해질까? 아마 이는 매일같이 겪고 있는 언어적 한계에서 오는 상황이 아닐까 싶다. 영어로는 충분히 하고 싶은 말들을 다 하지 못한다. 여전히 나는 머릿속에서 번역의 과정을 거쳐야만 대부분의 말이 영어로 나오고, 영어로 설명하기가 마뜩찮아 고민하다가 아예 그 주제에 대해 말하기를 포기하기도 일쑤다. 그러다 보면 내 속에 답답함이 쌓인다. 답답함은 표현의 부족으로 인한 자괴감이 되어 자꾸 우울함을 생산해 나 스스로를 괴롭힌다. 그렇기 때문에, '배설'의 욕구로 나는 자꾸 글을 쓰는 것이 아닐까? 최소한 내가 지금 쓰는 이 글은 내가 머릿속에서 온전히 생각한 그대로 '뱉어낼' 수 있으니까.

 그래서 약간은 무섭다. 특히나 요즘 힘든 이 시기에 평소보다 더 많은 이런 글의 주제를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 우울할 때에만 글을 쓰려고 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이런 연쇄반응으로만 고착화된다면 내가 글쓰기에 대해 어떤 감정으로 고정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무섭다. 나는 여전히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데, 내가 글쓰기를 시작하는 감정이 우울감 뿐이라면 우울에서 멀어지기 위해 글쓰기에서 멀어지고 싶어지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어리석은 생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요즘 정말 힘들어서 그런지 이런 고민들에 쉽게 빠진다. 그렇지만 행복할 때도 글쓰기가 생각나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삶의 어느 시점에도 글을 쓰는 것은 기분을 낫게 하거나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 내 글쓰기의 수준은 미약할 지라도 나를 치유할 정도는 된다. 그 정도면 훌륭한 힘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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