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때 만큼은 멍청한 내 스스로가 한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사실 오늘 저녁 때까지만 해도...나는 카톡에서 나를 차단한 사람을 확인하는 법을 몰랐다. 성인이 되고 나선 인간관계에 있어 큰 굴곡을 따로 만들지는 않아서였는지, 남이 나를 차단했는지 하지 않았는지 확인할 이유가 없었다.
작년 초부터 연락을 해오던 후배가 하나 있었다. 유학을 떠나기 전 여러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학교 앞을 뻔질나게 다니던 여름에 그 아이를 학교 정문 앞에서 만나게 되었다. 학부 때 교양수업에서 조별 과제로 만나게 되었고 그 이후로 가끔 리서치 참여를 해달라는 톡을 보내던 아이. 그 애는 석사를 마침 시작했다고 했고, 자신도 석사를 마치고 나면 유학 준비를 하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석사를 마치고 유학준비를 시작할 때 즈음인 작년 초부터 연락을 해오기 시작했다.
유학 준비를 어쩌다 혼자 하게 되어 정말 막막한 유학 준비 기간을 보냈던 나로써는 그 친구가 어느 정도 안쓰러웠고, 곰살맞게 구는 그 친구를 나름 예뻐하며 나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Zoom 미팅을 여러 차례 하며 내 CV와 SOP를 공유했고 추천서 초안까지도 보여주며 내가 아는 모든 것들을 공유하고자 노력했다. 내가 힘들었던 지점에서 최소한 학교 후배 한명 정도는 그런 힘든 구간을 덜 힘들게 지났으면 하는 박애정신 같은 게 꿈틀거렸던 것이다. 그 아이의 노력도 충분했기에 여러 곳의 좋은 학교에서 좋은 조건의 오퍼를 받았고, 그 학교들을 두고 고르는 과정에서도 마치 내 학교를 고민하는 것처럼 living cost, 날씨, 학풍 등등 모든 것을 따져가며 같이 고민해주었다.
학교에 오퍼 승낙을 하고 나서도 연락은 계속 되었다. 미국에 올 때 준비해야할 것들, 사소한 핸드폰 유심 관련 이야기라던가 비자 인터뷰를 어떻게 한다거나 SSN 서류 처리 등은 어떻게 하는지, 질문에 나는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성심성의껏 대답해주었다.
그 아이는 올해 8월 초 비행기로 미국에 들어왔고.... 그 이후로 나를 차단했었나 보다.
자신이 진학하게 되면 학교의 굿즈를 교환한다거나 하자, 등등 입발린 소리를 해가며 그 아이는 나에게서 얻을 것만 있었고 그 이후에는 일말의 무언가도 나에게서 기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걸까? 나는 정말 저 아이에게 그 정도밖에 안되는 사람인 걸까? 같은 생각들이 그 사실을 알고난 순간부터 황당함과 함께 스멀스멀 몰려왔다.
사실 어쩌면 미국에 들어오기 직전부터 좀 뜸해진 그 아이의 카톡 속도에서 이미 약간은 알아차렸는지도 모른다. 당시에는 인류애가 남아돌아 에이 바빠서 그런 거겠지 원래 첫 학기 시작 직전부터 처음 두어 학기는 어느 누구에게도 제대로 연락하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지나가니까, 따위의 평범한 변명을 직접 생각해주고 있었다. 너무 연락이 없는거 아니니ㅎㅎ같은 장난을 섞은 내 마지막 카톡은 그렇게 흐물흐물 차단 속에서 메아리쳤나보다.
오늘, 어쩌다 유튜브 릴을 통해 차단을 어떻게 확인하는지 알게 되었다.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렇게 내가 건드려고 하지 않았던 슈뢰딩거의 고양이 상자는 굳이 내가 그 아이의 프로필을 열어 차단을 확인하는 선택을 하며 인류애 상실로 끝이 났다.
아무리 다른 과, 다른 지역으로 진학하였다고 해도, 모교를 공유하고 유학생 커뮤니티들을 공유하며 정말 내 개인 프로필 하나를 차단하는 것으로 나와의 관계가 청산이 되었고 만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사회는 생각보다 좁고 길은 돌고돌아 연결된다. 당시에 이 블로그까지 공유를 해주었는데, 혹시라도 네가 들어와서 이 글을 읽게 된다면, 뭐. 읽어 보시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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