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22년 시작은 단연 내일 (14일)에 있을 Preliminary Exam일 것이다. 2021년 하반기 전체를 이 시험 하나를 보고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름 내내 Proposal Idea를 골랐고, 9월 중순에는 Proposal 초안을 완성해 교수에게 제출했다. 10월 동안 교수와 지지고 볶아서 프로포절을 고쳤고, 11월에는 커미티에게 연락해 시험 날짜와 시간을 잡았다. 일정이 결정되고나서부턴 PPT를 무지하게 뜯어고쳤고, 마지막 두어 주는 Script를 짜서 또 열심히 혼나가며 수정을 보았다. 그리고, 그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 내일, 약 열몇시간 후에 시험을 앞두고 있다.
가을 학기 시작부터 난항이었다. Proposal Idea는 매우 어설픈 상태였고, 일단 초안부터 가져오라는 교수의 성화에 약 1-2주만에 말이 되는지도 모르게 써내려간 연구계획서. 잘 모르는 주제에 어설프게 덤벼서 내일 시험을 앞두고 있는 지금에도 사실 마음이 너무 불안하다. 이것도 내 운이라면 운인 건지, 가장 바쁘게 준비를 해야하는 이 시기에 교수가 한가했다. 거의 매일, 교수가 1-2시간씩 교정을 봐주었다. 영어를 얼마나 못하는지, 온갖 다양한 타박을 들었다. 말도 안되는 문법이라느니, 뭐 등등...처음엔 상처도 많이 받았다. 문장이 make no sense라는데, 나는 이해가 되는데요...한국어로 쓸 때는 한번도 들어본 적 없던, 글에 대한 지적을 받으면서 자존감이 한동안 바닥을 쳤다.
글을 교정받는 수십 시간 동안 바닥을 본 줄 알았는데, 이번엔 PPT였다. 내가 PPT를 그렇게 못만드는 줄-아니 정확히는, 핵심을 못짚는 줄 이번 기회에 처음 알았다. PPT 교정을 받는 동안, 정말 많이 생각했다.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왔는지. 내가 그렇게까지 내 연구의 핵심조차 못 잡는다면, 내가 연구를 하는 것에 가치가 있긴 한건지, 혹은 내가 연구한 것의 가치를 지금까지 흘려보내고 있던 것은 아닌 것인지.
처음에는 그 모든 것을 나의 잘못으로만 돌렸다. 그렇게 하니, 더욱더 우울감에 빠져들었다. 너무 분해서, 집에 돌아와 자료를 고치며 엉엉 울기도 했고, 진짜 때려치고 돌아가버리고 싶단 생각도 정말 많이 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은 것이, 나는 너무 모든 것을 내 스스로의 탓으로만 돌리고 있지 않은가? 였다. 자기방어기제를 하나도 작동시키지 않은 게 아닐까, 싶었다. 교수는 나에게 초등학생 수준의 그래머 실수가 있다고 했는데 나는 일단 미국에서 초등학교를 나오지 않아서, 뭐가 초등학생 수준의 그래머인지 모르겠더라. Title case는...솔직히 미국 와서 처음 알았다. 그리고 교수가 처음 지적한 이후 매일매일, 새로이 가져갈 자료에 그렇게 눈을 씻고 찾아봐도 더이상 title case 에러가 없어서 교수에게 들고가면 웬걸, 교수는 또 그 실수를 어느 구석에선가 또 찾아낸다. 결국 내가 완벽히 익숙해지지 않는 이상 찾아내지 못할 에러였을 건데, 그 조차 너무 나 스스로를 구렁텅이로만 몰고 가고 있는게 아닐까 문득 생각하게 되었다.
이 힘든 시기를 거치며 인생에 도움이 될만한 것, 가장 큰 깨달음을 얻었다. 잘못하는 나와 그 기둥을 지탱하는 나를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나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어떤 점들은 고칠 필요가 있지만, 그게 내 가장 깊숙히 자리한 자아까지 무너뜨릴 필요는 없다. 영어를 못하는 나 때문에 나 스스로 '나는 왜 이것밖에 되지 못할까?' 생각하며 무너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못한다는 소리를 들어서, 밤을 새워가며 수정하고 스스로 고쳐내는 나에게 칭찬을 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움직이는 나에게, 다시 좌절이 온다고 해서 다시 일어서지 못할 필요도 없다.
최선을 다한다는 가장 간단한 규칙이 생각에 편안함을 가져다 주었다. 유학 준비 때 영어 시험을 준비하며 깨달았는데, 그 정공법은 이번에도 약간은 통한 것 같다. (내일 합격을 받아야 정말 통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한달에 한번씩, 3번째 GRE 시험을 치르며 그 시험을 망한다면 유학 자체를 미뤄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했다. 그 마지막 달, 정말 성실히 공부했다. 그러지 않으면 너무나 후회할 것 같았다. 유학을 못가는 이유가 고작 이것 때문이어서라면, 평생을 걸쳐 이 시기에 열심히 하지 않은 나에게 너무나 실망을 할 것이 뻔했기 때문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혼은 나고 있는데, 열심히 하지 않기까지 한다면 혼을 나는 이유조차 없을 것이었다. 교수의 말에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아서 진짜 심각하게 그만둘까 생각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나 스스로가 아닌 남 때문이라면, 끝까지 버텼다고 말할 수 없다면, 내가 그만두고나서 과연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싶었다. 내가 정말 내 한계까지 달리고 나서 더이상 안되겠어라고 생각하면, 그 때는 그만둬야할 때가 맞겠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에 떨어질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그렇지만 떨어지지 않기 위해 한계까지 달려보자 마음 먹고 달렸다.
최대한 일찍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했다. 열심히 읽었고, 열심히 고쳤다. 모르겠으면 물어보았고, 혼이 나더라도 주저하지 않았다. 만약 내일 시험을 잘 통과하고, 궁극적으로 박사를 잘 졸업하게 된다면 지금 이 시기의 나가 가장 열심히 살아서 얻게 될 보상일 것이다. 혹시 모르지, 내일 떨어질지도. 그렇지만 내일 떨어진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충분히 노력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후회는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일 시험을 잘 치르고 PhD Candidate으로 돌아오고 싶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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