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산업의 양면성, 시대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의 양면성
밤쉘 (Bombshell: The Hedy Lamarr Story, 2017)

My Rate : ★★★★☆ (4.5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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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1 CGV 신촌아트레온 2D
내가 주로 방문하는 CGV는 신촌 아트레온 지점이다. 집과 학교에서 가깝다 보니 주로 이용하는데, 얼마전 아트하우스관이 새롭게 지하로 옮겨 궁금했는데 마침 보고 싶던 영화까지 개봉을 한 터라 선택하러 보러가게 되었다. 다큐멘터리 영화이자 아트하우스 예술 영화로 분류된 영화다 보니 보통은 영화관 자리를 많이 메우는 편은 아니지만, 영화관이 암전되고 난 몇분까지도 홀로 있어본 적은 그날이 처음이어서 꽤나 신기한 경험이었다. 한손으로 꼽을 숫자의 사람들만 최종 입장을 한 날이었다.
사실은, 그래서 너무나 아쉬웠다. 이 영화만큼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보고 기억해야 할 내용이었다. 영화 한줄평으로 서술한 내용처럼, 이 영화는 영화 산업이 가진 양면성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예시를 다루고 있다. 극적인 삶을 살다간 배우, Hedy Lamarr (본명 Hedy Kiesler, 이후 Hedy로 통일함)의 삶을 조명하며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영화 산업이 보여주는 절실한 양극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영화는 Hedy의 전기를 충실하게 다루며 관련된 사람들-자녀들, 혹은 같이 일했던 사람들-과 그녀의 인생을 연구한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마디마디 삽입한 전형적인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단순히 생각해보면, 그녀가 배우로서 살았던 삶의 성취와 행복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누구나 일반적인 이야기를 다룰 영화를 생각하겠지만,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 영화로 그녀의 삶을 조명했다는 것은 너무나도 확실히, 과학자로서 인정받지 못한 그녀의 삶은 진중하게 다루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소위 말하는 과학 분야에서의 '천재'들이 영화에서 다뤄질 때, 이 것이 비록 상업영화일지라도 그들의 삶을 진지하게 다루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이 영화가 채택한, Hedy의 삶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조명한 방법이 다큐멘터리라는 점에 굉장히 감사함을 느낀다.
Hedy는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아이였다고 한다. 여성에게는 충분히 진중한 교육이 제공되지 않는 시절이었음을 생각하면, 그녀가 유년시절을 통해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는 창의력을 키웠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실현할 능력이 부족했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부분은, 그녀가 정말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대였다면...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린 나이에 유럽에서의 강렬한 영화 데뷔를 마치고, 그녀는 심상치 않은 전쟁의 기운을 따라 미국으로 터전을 옮긴다. 그녀가 미국 영화사의 파란만장한 발전 기간 동안 얻게된 명성과 기회는 대부분, 그녀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여신인 것처럼, 너무나 예뻤기 때문이었다.
Hedy가 외모로 성공하여 외모로 돈을 벌며 홀로 자녀들을 키워내면서도, 언제나 놓지 않았던 것은 호기심이었다. 호기심과 창의력은 Hedy가 힘들고 지치는 삶을 살면서, 언제 끝이 보일지 모르는 문제를 풀어내는 그 과정 속에서 그 때만큼이라도 현실을 잊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즐거움을 즐기는 시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인이 Hedy의 삶을 조명하게 된 가장 큰 경위는, 이 고도화된 사회에서 더이상 바뀌지 않을 기준이 된 보안 기술 형태의 고안을 가장 먼저 특허로 발표한 사람이 Hedy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Frequency Hopping, 주파수 도약이라고 불리는 이 기술은 현재 무선 통신 기술에서 말 그대로 근간이 되어버린 기술로, 일상에서 우리는 숨쉬듯이 이 기술을 사용한다. Wi-fi, GPS, Bluetooth 등 우리가 사용하는 거의 모든 통신기술은 이 기술이 절대적으로 적용되어 있다.
Hedy는 오스트리아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였다. 전쟁의 불안이 가득한 유럽 대륙을 탈출한 것 뿐만 아니라, 그녀는 억압받던 첫번째 결혼 생활또한 버리고 자유를 찾아 건너온 이민자로써, Hedy는 자신에게 자유를 준 이들과 이 국가에 헌신하고자 했다. 그녀는 무선으로 어뢰를 조종할 수 있도록 하면, 일반인까지 공격하는 독일의 잠수함들을 충분히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해 이를 현실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하지만 무선으로 어뢰를 조종할 때 시그널이 적국에 의해 가로채일 경우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보안적인 요소가 도입되어야만 했다. 즉, 해킹당하지 않고 적국의 잠수함에 도달하게 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이 우리만 이해할 수 있는 코드로 전파를 보내고 받아야만 하는데, 피아노에서 악보를 보고 건반을 누르듯 여러 대역의 주파수로 정보를 보내고 읽는 방식을 발명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앞서 말한 듯이, 이 기술은 현대에 와서는 모든 보안이 필요한 전파의 전송이 이뤄질 경우 진행되는 가장 기본적인 기술이 되었다.
Hedy가 개발한 이 기술이 당시에는 왜 그렇게 알려지지 못했을까? 당시의 시대를 살고 있던 사람들이 단순히 정보의 중요성을 간과해서 그런 일이 벌어진 거라면, 차라리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이 기술을 발명하고 특허를 낸 후, 그녀는 처음 목적대로 이 기술을 군으로 전달하였다. 이 기술을 사용하여 전쟁에서 자신이 조국이라 생각하는 이 곳이 승리하길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미군은 이 기술이 적국 출신의 이민자, 심지어 당대에 가장 예쁜 외모를 가진 배우로 주목받는 그 Hedy가 이 기술을 발명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기술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심지어 이 기술에 대한 특허권까지 몰수했다. 자신있게 만들어낸 기술이 인정받지 못하고, 쓰이지도 못하게 된 것에 대해 그녀는 절망하고 실망했을 것이다. 기술이나 정보의 중요성에 몰두하지 않고, 어떤 사람이 기술을 발명했는지에 대해 더 신경쓰는 것은 요즘도 여전하지만, 이 시대에서 그녀는 더욱 더 낮은 형태의 지지를 받았다. 정확히는, 지지보다는 조롱과 비난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녀는 싱글맘으로써 아이들을 홀로 키워내야만 하기도 했다. 그녀에게 부를 가져다 주었던 그녀의 주된 커리어인, 배우로 살아가기 위해선 그녀는 계속해서 아름다움을 유지해야만 했다. 그게 그녀의 상품성이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에서 상품으로 전락한 배우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던 성형수술을, 그녀 자신도 여러 차례 중독 수준으로 받았다. 이 성형수술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사실 나는 어떤 부분보다 충격적이면서도 그녀다운 부분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했다. Hedy는 성형 수술을 받을 때에도 호기심을 멈추지 않았다는 인터뷰에서, 그녀가 제안했던 여러 방식은 초기의 성형 수술의 발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것이었다. 주름진 피부를 당겨 보이지 않는 부분에 절개선을 마무리한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그녀 자신의 수술에서도 시도했고 끊임없이 물어보았다는 것이다.
세월은 인간의 노화를 부르고, 어떠한 방식으로도 인간의 노화는 반드시 진행되지만 기형적인 산업의 중심을 살아내는 사람들은 그럴 수가 없었다. Hedy가 살아온 시대는 그러한 삶의 방식을 유지해야만 버틸 수 있다고 믿는 사회였기 때문에 더욱이 그녀는 자신이 가장 아름다웠던 모습을 지켜내고자 했다. 어리고 예쁜 젊음만을 탐색하는 사회에서는 끝까지 버틸 수 없다는 걸 모르는 것은 아니었겠지만...어느 누가 그녀를 비난할 수 있을까.
다행히도 그녀가 죽기 전 Hedy의 업적이 세상에 조금씩 알려졌고, 비록 특허 반환 및 배상 소송 등에서는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지만 어느 정도는 발명가로써 그녀가 살아온 시간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특히, 그녀가 오랫동안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 생활고를 겪고 있었는데, 발명가 협회 등에서 상을 받거나 하며 보조적인 상금으로 약간은 편해졌었다고 하여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삶을 마감하기까지, 그녀의 모든 인생의 굴곡과 역정을 꽤나 잘 잡아낸 좋은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전기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관찰한다는 것이 좋은 평전을 여러 인터뷰이의 버전으로 조명하여 보는 것과 같게 느껴졌다.
여러 좋은 점들이 있었지만,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는 영화 산업의 양면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좋은 예시라고 생각한다. Hedy는 그녀의 삶을 통틀어, 영화 산업에서의 성공이 그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선정적인 영화로의 첫 데뷔, 그리고 미국으로 건너와 할리우드에 몸담으며 그녀의 아름다움이 뒷받침한 그녀의 성공은 그녀에게 오히려 성공의 가능성을 영화 내에서로만 제한하게 만들었다. 돈을 벌고 살아남기 위해서 그녀는 영화계에서 끝까지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미녀로 남아야만 했다. 끝내, 세월의 힘을 이겨내지 못한 그녀는 초라하게 스크린 뒤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녀의 삶은 결국, 몇십 년이 지나 다시 영화로 조명되었다. 사람들에게 Hedy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떠한 업적을 이루었는지 보여주는 전기 다큐멘터리로 그녀는 다시 사람들에게 각인되었다. 영화는 사람들에게 이미지와 이야기를 각인시킨다. Hedy Lamarr의 삶은 살아 있을 때에는 영화로 인해 흥했고, 무너졌으며, 사후에는 그녀의 업적을 기리는 방식으로 다시 흥했다. 이처럼 영화 산업이 한 사람의 양극단을 모두 이끌 수 있는 사례라는 점을 통해, 우리는 영화의 양면성을 기억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영화 산업의 양면성 이외에도 시대가 한 사람을 다른 방식으로 이끌 수 있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이 영화를 통해 그녀의 삶을 되짚으며 했던 가장 큰 생각은 그녀가 최소한 지금의 시대에 태어났다면 다른 방식의 삶을 충분히 살 수 있었을 거라는 것이었다. 시대가 사람의 가치를 한정짓던 때의 삶과,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그러지 않으려고 하는 현 시대의 삶이 가진 격차가 너무나 안타까웠다. 여전히 여성으로 우리는 많은 힘듦을 겪고 있지만, 우리는 기초 교육 분야에서만큼은 평등이 어느 정도 확보되었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지금을 사는 우리는, 여성이라고 해서 의무 교육에서 탈락하고, 과학 공부를 하지 못하지는 않지 않는가. (과학계에 불평등이 존재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과학도로써, 여성 과학인들이 겪는 다양한 불평등 사례는 여전히 다수이다.) 최소한, 그녀가 지금의 20대라면 이공계열의 대학을 진학해 졸업하고 전공을 살려 계속 공부하거나 산업체에서의 근무를 할 수 있었을 거라는 점이다.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고,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었을 것이며, 그녀가 살아온 삶의 밑바탕에 깔린 치열함을 보았을 때 그녀는 모든 것을 다 해내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 것이 너무도 아쉽고 안타깝다.
★좀 더 디테일한 정보를 기록하고 싶었지만, 영화를 보면서 간략히 정보를 기록한 쪽지를 잃어버려 그럴 수가 없었다. 혹시나 영화를 다시 보게 된다면 이 글로 돌아와서 아쉬웠던 흔적을 수정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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